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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할머니와 오토바이족,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이에 대해 어른이 가져야 할 시선

by 김길김라 2024. 9. 30.

1986년 어느 잡지에 실린 짤막한 글입니다. 이 글의 주인공은 한일은 따뜻한 마음으로 소년을 바라본 것뿐이었습니다. 어른이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젊은이에게 가져야 할 모습인 것 같아 여기로 옮깁니다.

 

원제 할머니와 오토바이족

부제

 

그런 어린 소년이 먼지투성이의 오토바이족과 한패가 되어 가장 요란한 소동을 떨려고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작가 마스 스위니

 

 

 

1. 

나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자동세탁소에 혼자 있었다. 한여름의 후텁지근한 날이었는데, 비누 냄새가 나는 한증막 같은 실내에선 세탁기가 돌아가면서 철버덕 쏴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문을 활짝 열어 놓은 비교적 시원한 문간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오타바이 6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큰길에서 빠져나와 세탁소 바로 옆에 있는 주유소로 들이닥쳤다. 오토바이에 탄 사람들은 사납고 거칠어 보이는 얼굴에, 시끄럽게 쌍소리를 섞어 가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순간 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저들이 나쁜 마음이라도 먹고 있다면, 희끗희끗한 머리에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나의 모습을 보고 과연 어른 대접을 해줄지는 의심스러웠다.

 

2.

 그러나 그 패거리는 기름을 넣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는 듯했다. 주유소 직원이 기름을 넣고 있는 동안 그들은 자동판매기에서 음료를 꺼내 꿀꺽꿀꺽 마시기도 하고 막대 사탕을 빼내 우두둑우두둑 깨물어 먹기도 했다.

 그중에서 누구보다도 어려 보이는 젊은이-흐트러진 머리에 건방을 떨고 있었지만 기껏해야 17살밖에 안돼 보였다-가 제일, 시끄럽고 상스러워 보였다. 그는 자기가 깡패들 중에서도 제일 깡이 세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허세를 부리면서 거들먹거리고 있었다.

 저런 나이 어린 소년이 난폭한 오토바이 깡패들하고 어울리다니, 도대체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나는 궁금하게 생각했다. 흥분일까? 아니면 모험일까? 바로 그 순간 그 소년은 내 쪽을 흘끗 보더니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거칠었는지 문득 깨닫기라도 한 듯 조용해졌다. 주유소 벽에 기댄 채, 소년 작은 우리 마을을 이루고 있는 몇 채의 상가 건물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담한 집들을 둘러보았다. 그의 두 눈은 저 멀리 파아란 언덕 끝까지 굽이굽이 펼쳐진 초록과 황금빛 들판을 바라다보았다.

 

 

 

 

3. 

 오토바이마다 기름이 다 채워지자, 일한은 제각기 자기 오토바이에 올라타고는 떠나갔다. 그 소년은 대열에서 떨어져 나와 자기 오토바이를 끌고 세탁소 입구 가까이에 세워 놓았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동료 하나가 휘익 원을 그리며 돌아오더니 고함을 질렀다. “, 고장 났니?”

 소년은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저었다. “그냥 가. 따라갈 테니까.”

 

 소년은 자기 패거리들 시야에서 벗어나고 부르릉거리는 엔진 소리마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질 않았다.

 그러더니 소년은 무척이나 지친 듯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소년의 셔츠와 바지는 먼지와 기름과 땀으로 얼룩져 있었다. 갓 돋아난 수염이 턱과 여윈 두 뺨을 희미하게 덮고 있었다. 소년의 얼굴에 어떤 감정이 어른거리며 스쳤다 -회의, 그리움, 고통?

 소년은 미소를 띄울 듯 말 듯 입술을 일그러 뜨리더니, 이내 한일자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어 소년은 오토바이에 걸린 가방 속에 손을 넣어 옷가지를 끄집어내더니 세탁소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나는 소년이 지나가도록 옆으로 비켜섰다. 소년은 그 옷다발을 빈 세탁기에 던져 놓고는 구멍에다 동전을 집어넣었다.

 

4.

 소년은 밖으로 나가 오토바이를 반짝반짝할 때까지 닦고 문질러 댔다. 젖은 옷을 건조기에 옮겨 넣을 때만 잠시 안으로 들어왔을 뿐이었다.

 옷이 다 마르지, 소년은 그걸 들고 주유소의 화장실로 사라졌다.

 

 10분 뒤에서 소년은 산뜻하게 세탁된 옷을 입고 나타났다. 얼굴은 깨끗했고 수염도 없어졌으며 머리 또한 단정하게 빗은 모습이었다.

 소년은 내 쪽을 보고 싱긋 웃고는 오토바이에 껑충 뛰어오르더니 큰길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같이 왔던 다른 동료들을 뒤쫓아간 게 아니라 처음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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