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의 신화에 대한 1986년의 글입니다.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Norma Jean Mortensen, 1926~1962)를 백치미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의외의 글들이 계속 보입니다. 아래의 글은 1986년 리더스다이제스트 1월호에 실린 글 전문입니다.
마릴린 먼로는 이런 이런 여자
참다운 마릴린 먼로는 진장 그 여자 자신이 원치 않으면 아무도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을 그런 여인이었을까?
작가
모리스 졸로토우
전문
1.
날마다 관광객들이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맨스차이니스극장'(옛 그로먼극장) 앞마당에 벌떼처럼 몰려와서, 지난날의 영화배우들이 찍어 놓은 손자국과 발자국 그리고 사인들을 경이에 찬 눈으로 들여다본다. 그 손 발자국들 한가운데 황금빛으로 칠해진 네모꼴 안에 마릴린 먼로가 1953년 6월 26일에 찍은 자국이 남아 있다. 먼로의 손발자국이 어디 있을까 하고 두리번거릴 필요는 조금도 없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 바로 그자리기 때문이다.
마릴린 먼로의 발자국을 유심히 들여다보거나 자기 손가락을 맞추어 보는 사람들은 대개가 젊은 여성들이다. 한 가지 섬뜩한 사실은, 그런 여성 가운데 더러는 몸짓이나 옷차림이나 심지어 목소리까지도 먼로를 꼭 빼닮았다는 점이다. 그런 모습은 인기 절정의 팝스타 마돈나가 최근에 내놓아 히트한 비디오앨범 ‘관능적인 여자 Material Girl’에서,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에 나오는 마릴린 먼로의 외모를 그대로 흉내내면서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2.
마릴린 먼로는 지난날의 여느 스타들과는 달리, 우리의 뇌리에서 좀체로 사라지지 않고 있다. 먼로는 생애를 통틀어 출연한 영화가 28편밖에 안되며 주연한 작품은 고작 16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중‘7년 만의 외출’, ‘버스정류장’, ‘뜨거운 것이 좋아’,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 등 몇 편은 고전적 작품이 되었다. 존 휴스턴 감독은 먼로에 대해 말할 때면 언제나 이 스타가 “마치 밀려오는 조수와 함께 황혼 녘에 솟아오르는 바다 위의 안개처럼” 어떤 신비로운 자연의 마력을 지닌 사람이기라도 한 듯이 이야기했다.
내가 처음 마릴린 먼로를 만난 곳은 1953년 당시 신문 칼럼니스트이자 라디오 뉴스해설자인 월터 윈첼을 위한 만찬회 석상에서였다. 상석에 앉은 윈첼의 양옆에는 20세기 폭스사 제작부장 대릴 재너크와, 세퀸(의복의 장식으로 다는 반짝거리는 원형의 금속 조각)으로 장식된 착 들어붙는 밝은 초록색 드레스를 입고, 짙은 화장에 인조 속눈썹을 한 표정 없는 마네킨 같은 여인이 앉아 있었다.
3.
촬영소에서 또 꼭둑각시 하나를 탄생시켰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곧이어 나는 그 여인에게 소개되었다. 그 인형 같은 여인의 눈에는 연약하고 순진무구하면서도 잔뜩 겁먹은 빛이 서려 있었다. 겉으로 나타난 그 여인의 모습과 내면에 숨겨진 참모습이 서로 엇갈려 나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그로부터 6년이란 긴 세월 동안 나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샛별처럼 떠오르는 마릴린 먼로라는 여배우를 뒤쫓으며 그 여자에 관한 수많은 불가사의를 풀어 보려고 애쓰게 되었다.
한번 조지큐커 감독에게 마릴린 먼로가 가진 매력의 원천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마릴린의 육체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만큼 예쁜 여자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마릴린의 매력은 두 눈에서 나옵니다. 당신을 바라보는 그 눌길에서 나오고 있지요.”
마릴린의 영화 감독한 또 한사람인 빌리 와일더의 의견은 달랐다. “아니오. 마릴린이 가진 매력의 원천은 마의 이야기를 듣는 귀에 있소.” 와일더가 ‘7년 만의 외출’을 감독할 무렵, 마릴린 먼로는 이미 와일더의 작품에 출연한 어느 여배우보다도 훌륭한 코미디 연기자가 되어 있었다. 마릴린은 지극히 선정적인 대사까지도 달콤하고 앳된 특유의 어조로 유쾌하고 우승꽝스러우면서도 다정다감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릴린 먼로의 예술적 순수성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표현한 사람은 시인 델모어 슈워츠였다. “마릴린 먼로는 오로지 한 관점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고 그는 썼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이유라 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란 관점이다. 마릴린의 몸가짐과 태도는 그야말로 순진무구하다.” 마릴린은 결코 저속하지도 않았고 외설스럽지도 않았다.
4.
‘7년 만의 외출’에서 마릴린은 노련한 연기자 톰 유얼과 공연했다. 이 영화에서 유얼은 뉴욕의 한 출판사 사장으로 분했는데 그 가족은 피서차 시골에 내려가 있었다. 마릴린은 유얼이 사는 고급아파트에 이웃으로 세 들어온다.유얼은 마릴린에게 와서 더위를 식히라고 불러들인다.
한 번은 유얼과 마릴린이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서투른2 중창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마릴린과의 정사를 머리속에 그려 오던 유얼은 자기도 모르게 황홀경에 빠져 마릴린의 입술에 어색한 키스를 한다. 두 사람은 몸의 균형을 잃고 함께 방바닥에 쓰러진다. 유얼은 수치심을 느끼고는 곧 뉘우친다. “난 이런 일이 생전 처임이오.” 그의 말에 마릴린은 “그래요?”하고 명랑하게 대꾸한다. “나한테는 늘 있는 일인걸요.”
마릴린의 매우 재치 있는 여자이기도 했다. 그가 캘리포니아주 펜들턴기지에서 1만 명의 해방대원을 위한 노래를 부르고 났을 때, 한 사람이 큰 소리요 외쳤다. “이봐요, 마릴린. 스웨터 걸(가슴을 강조하기 위해 몸에 꼭 끼는 스웨터를 입은 가슴이 풍만한 젊은 여자, 여배우, 모델 등을 일컬음) 들을 어떻게 생각해요?”
“당신네 남자들은 스웨터 걸이라면 왜 그렇게 사족을 못 쓰는지 모르겠어요.” 마릴린은 숨 가쁜 억양으로 때를 놓치지 않고 기막히게 받아넘겼다.한번 스웨터를 벗겨 보세요. 그 속에 뭐가 있나!” 해병들은 화호성을 지르고 휘파람을 불며 발을 쾅쾅 굴러대면서 한사코 마릴린을 무대에서 내려 보내려 하지 않았다.
5.
마릴린의 우스갯소리는 개그 작가들이 써주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마릴린은 즉흥적으로 그런 농담을 했다. 영화에 나오는 마릴린의 재치있는 대사들 중에는 그 자신이 지은 것도 있고 시나리오 작가가 쓴 것도 있지만, 마릴린은 언제나 그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 냈다.
마릴린은 참으로 멋진 미소와 환한 웃음과 기쁨에 찬 홍소를 가지고 있었다. 때로는 “삶의 기쁨”에 넘쳐서 웃음을 터뜨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카메라 앞에 서기를 더없이 좋아했는데, 마릴린만큼 카메라를 사랑한 사람은 실로 전무후무하다.
화보잡지 ‘룩 Look’의 사진기자 얼 다이슨은, 카메라의 파인더를 통해서 보면 마릴린의 모습이 마치 저속도촬영법으로 찍은 영화에서 꽃잎이 활짝 벌어지는 한 송이 꽃처럼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강렬한 아름다움은 의식적으로 꾸민 것이었다. 참으로 마릴린 먼로는 자기가 원치 않는 한,아무도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을 그런 평범한 여자였다. 사생활에서는 화장을 하지 않고 루즈도 바르지 않은 채 청바지에 끈 없는 운동화 차림으로 돌아다니기를 좋아한 마릴린이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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