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영화 평론가 존 쿨리어가 잡지에 기고한 관객을 끌려면 이런 영화를 이라는 주제의 글입니다. 2024년 지금 봐도 어디 하나 이상할 것이 없는 글입니다.
관객을 끌려면 이런 영화를
폭력과 원색적인 섹스와 저질의 대사가 난무하는 요즘의 영화를 비판하면서 보다 높은 가치관과 참된 유머를 담은 영화를 만들 것을 주장하는 한 평론가의 외침은 귀 기울여 들을 만하다
작가
존 쿨리어
전문
1.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 내가 바로 그런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동안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한번 생각해 보시라. 보고 싶을 때는 돈 한 푼 안 내고도 얼마든지 많은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영화를 보면서 먹는 팝콘 값까지 사장이 대주는 판이었으니! 영화회사들이 내가 배우와 감독들을 인터뷰할 수 있도록 이따금 나를 비행기1등 칸에 태워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게 주선해 주었다. 그리고 언제나 최고급 호텔에 묵었으며, 물론 모든 비용은 그네들 부담이었다. 3년 반 동안, 내가 쓴 400여 편의 영화평은 일주일에 두 번씩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 있는 KFMB-TV의 지녁 뉴스 시간에 전파를 타고 나갔다. 내가 원했다면 그 직업은 언제까지나 내 것이었다. 결국 드러난 사실이지만, 내가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느냐가 문제였던 것이다.
내가 비평한 영화들은 그 대본이나 연기의 대부분이 기껏해야 그저 그렇고 그런 것들이었다. 독창이나 영감, 참된 유머 같은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바람직한 연기를 하는 전형적인 배우상이나 무언가 사색을 하게 하는 주제도 거의 없었다. 따라서 내가 추천하거나 찬사를 보내는 일은 드물었다.
2.
영화관객들은 나의 비평에 끊임없이 반응을 보였다. 그들 대부분은 나의 솔직한 태도와 함께 화면에 한결같이 나타나는 폭력과 섹스 등 저질 장면에 대한 나의 비판에 갈채를 보내는 것이었다. 이따금 반대의견을 밝히는 관객들이 있기는 했다. 그리고 논조를 좀 누그러뜨리라고 압력을 가하는 동료들도 있었다. 어떤 관객은 내가 ‘내셔널램푼 휴가소동, National Lampoon’s Vacation’이라는 영화에서 근친상간을 암시하는 장면에 대해 비난했더니, 무척 화를 냈다. “근친상간은 항상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뭐 그리 대단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논박해 왔다. 약이 오르게도 워너브라드스사가 제작한 이 영화는 1983년 여름 동안 흥행수입면에서 상위권에 들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 솔직한 의견을 피력했다. 나는 할리우드에서 잇달아 쏟아져 나오는 추악하고 허섭스레기 같은 영화들을 그대로 보아 넘기지 않음으로써 뭔가 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고 또 한참 동안은 일이 제대로 풀려 갔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비평을 쓰고는 내 마음속에서 언짢은 기억을 씻어낼 수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본 영화를 통해서 그다지 영향을 받은 건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일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작업은 해마다 그 해의 우수 영화 10편을 골라내는 일이었다. 정말로 뛰어난 영화를 6편 이상 골라낼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는데 미국에서 매년 300편이 넘는 영화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선정한 영화 가운데 ‘부드러운 자비, Tender Mercies (1983)’, ‘이티, E.T. the Extra-Terrestrial (1982)’, ‘부쉬벨트 기총대, Breaker Morant (1980)’, ‘여우와 사냥개, The Fox and the Hound (1981)’, ‘네버 크라이 울프, Never Cry Wolf(1983)’, ‘그레이스토크 Greystoke: The Legend Of Tarzan, Lord Of The Apes(1984)’, ‘불의 전차, Chariots Of Fire(1981)’ 등이 들어 있었다.
3.
졸작 영화 10편을 고르는 일도 큰일이었다. 서로 막상막하인 영화의 수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그 가운데서 가장 형편없는 영화 10편을 결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입에서 “이제 그만”하는 말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그런 영화를 자꾸만 보면 볼수록 내 마음이 차츰 변하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영상과 언어와 감정을 지워 버리는 데 시간이 점점 더 오래 걸리기 시작했다. 의기소침할 때가 많아지고 아내나 아이들한테서 조금만 자극을 받아도 금방 화를 내게 되었다. 마침내 나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영화평론가로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것은년 8월이었는데 그 후 나는 영화를 한 편도 안 봤다.
나 같은 사람은 물론, 그 밖의 수많은 사람들을 다시 영화관으로 끌어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마땅히 이런 영화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3.1. 보다 상상력에 호소하고 덜 노골적인 영화
다시 생각해 보자. 서스펜스영화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은 자기 영화에서 유혈이 낭자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따위의 특수효과를 쓰는 일이 드물었다. 그는 화면에 비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공포심이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새겨지게 했다. 오늘날, 영화제작자들은 노상 피를 한 사발 담아가자 관객의 얼굴에 끼얹는 식으로 영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3.2. 좀 더 다채로우면서도 저질스럽지 않은 영화
천한 말을 쓴다고 해서 반드시 현실감이 더해지는 것도 아니고, 미묘한 감각이 더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시나리오작가나 영화제작자가 하층사회 수준 이상의 대화를 구사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 줄 뿐이다. 언어란 거칠게 사용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다채로워질 수 있다.
3.3. 보다 심미적이고, 섹스를 원색적으로 처리하지 않는 영화
가슴을 드러내고 바지를 벗는 것, 이것이 오늘날 영화에서 남녀 간의 은밀한 장면을 다루는 데 너도나도 쓰고 있는 수법이다. 지난날의 재능 있는 영화제작자들은 사랑의 열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내놓고 발가벗기는 방법에 의존하지는 않았다.
3.4. 비열한 인간보다 이상적인 인간형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
긍정적이고도 완벽한 연기를 해내는 전형적인 배우는 이제 화면에서 사라지고 있다. 제임스 딘은 이유 없는 반항아였는지 모르지만, 오늘날의 영화는 무책임한 반항을 그려 내고 있다.
3.5. 보다 품위 있고 덜 저속한 영화
‘대부’처럼 폭력을 다룬 영화라도 품위 있게 만든 것은 역시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등장인물들이 실제 인물처럼 그려져 있는 데다가 자기 역에 꼭 맞는 배우들이 이 영화를 살려 놓은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스팅, the Sting(1973)’은 더 바랄 게 없을 정도로 품위 있는 역작이다.
3.6. 유머가 보다 많고 수치심을 유발하는 내용이 적은 영화
요즈음에는 유머의 칼날이 점점 더 잔혹해지고 있다. ‘미스터 로버츠 Mr. Roberts (1955)’에서 풀버소위로 나온 잭 레먼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기분 좋게 웃었는지를 잊은 것일까?어째서 우리는 ‘투씨, Tootsie (1983)’에서처럼 보다 진솔한 유머를 가질 수 없는가?
4.
개선을 저해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대부분의 주요 영화사에서 만연하고 있는 조직체 심리다. 겹겹이 싸인 관료주의 속에서 독창성은 사장되고 만다. 신출나기 작가들은 자기들의 작품을 눈여겨 읽어 줄 사람은 고사하고, 동정적으로 귀를 기울여 줄 사람조차도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5.
대부분의 극장주들에게는 최대의 수익을 올리는 것이 첫째 관심사다. 그들에게 자기네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의 내용에 대해 물어보라.아마도 십중팔구는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 대부분이 자기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사전에 보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영화에 묘사된 가치관이나 태도가 1980년대에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나는 여성과 소수민족을 다루는 태도에 있어서는 그런 주장에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화면에서 나타나는 언어나 폭력행위, 적나라한 섹스장면(동성애를 포함하여) 등에 대해서만은, 우리가 구식이라고 몰아붙이는 것들 속에 오히려 뭔가 쓸 만한 것이 있다고 믿는다.
검열?
검열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검열이란 어차피 주관적인 판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저질 영화에 대해 불평하고 불쾌한 영화를 관람하지 않음으로써 그런 영화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극장주들에게 알릴 수는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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