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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사첼 Satchel의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 리로이 로버트 사첼 페이지 이야기

by 김길김라 2024. 9. 29.

마이너리그의 전설의 야구왕 새철 페이지에 대한 1985년 글입니다. 이 글은 사첼 Satchel의 지인 존 벅 오닐이 1985년에 쓴 글입니다. 이 글의 이전글은 아래의 페이지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시 표기를 새철로 해 두어서 원문 그대로 표기하였습니다. (읍니다는 습니다로 변경한 정도) 

 

잊을 수 없는 야구왕 새철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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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166 강속구 야구왕 사철 페이지

 

시속 166km 강속구 야구왕 사철 페이지 Satchel Paige의 옛 이야기

잊을 수 없는 야구왕 새철 페이지 Satchel Paige라는 제호의 1985년 글입니다. 한 때 시속 166km의 강속구를 자랑했던 새철은 마운드에서 익살을 부려 관중을 웃기는 일에도 천재적 재능을 보였다고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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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철의 길

새철은 재키 로빈슨 이 브루클린 다저스팀에 입단한 그 이듬해인 1948년에 마침내 메이저리그 선수로 뛰게 되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팀의 구단주 빌 비크가 당시 42살이던 새철을 자기 팀으로 불러들여 계약을 맺었을 때, 새철은 "홈페플레이트는 어디나 같은 크기 아뇨?"하고 딱 한마디 했을 뿐이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한 10분간 뛰면서 몸을 풀라고 누가 권하면 새철은 "팔로 던지지, 발로 던지나?"하고 받아넘겼다. 그는 오늘날의 선수들이 받는 거액의 연봉에 대해서 못마땅해하지 않았다. "나는 10달러 이상은 셀 줄을 몰라. 내 마누라가 주는 돈이 기껏해야 그것밖에 안되지." 직업적인 코미디언들도 새철과 함께 무대에 섰다 하면 삼진을 당한 타자들이 그러하듯이 절레절레 흔들면서 풀썩 주저앉는 일이 허다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첫 해에 새철은 엄청난 관중을 끌어들였고 투수로서 6승 1패를 기록해 비크가 예언했던 대로 인디언스팀이 아메리칸리그에서 주전투수로 뛰고 싶었다. 그러나 4게임이 지나도록 후보선수로 벤치만 지키고 있어야 했다. 5번째 게임에서 내셔날리그 우승팀인 보스턴 브레이브스가 7회에서 11대 5로 앞서자 마침내 감독이 새철에게 구원투수로 등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새철은 2명의 타자를 삼진 시켰고 그것이 전부였다. 딱 1회 만을 던진 후 마운드에서 내려오라는 지시를 받았던 것이다. 인디언스팀은 다음 게임에서 월드시리즈의 패권을 움켜쥐었다. 

 

 새철은 월드시리즈에서 더 이상 뛰지 못했던 것을 못내 가슴 아파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은 그가 야구를 하기 위해 산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야구를 했다는 점이다. 새철은 돈을 헤프게 썼다. 맨 처음 사들인 것 중의 하나는 모빌에 사는 어머니를 위해 구입한 큰 저택이었다. 그 이후 새철은 낚싯대, 엽총, 골동품, 멋진 옷가지와 자동차 등을 마구 사들였다. 

 

 1947년 라 호마 브라운과 결혼하고 나서도 이러한 낭비벽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는 다소 안정된 생활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캔사스시티에 큰 저택을 구입, 2세들로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결혼할 때 딸아이 하나를 데려온 부인 라 호마는 라들 둘과 딸 다섯을 더 낳았다. 

 

 라 호마는 신앙심이 돈독한 부인으로 새철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새철이 자신이 만든 젊을 유지하는 비결을 다시 고쳐, "무를 씹어 먹어 건강을 유지했지만 내가 이렇게 계속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은 하느님 덕분이야"라고 말해도 그 말에 비친 새철의 내적 변화를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새철의 젊을 유지하는 비결


새철의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


1. 기름에 튀긴 고기를 먹지 말 것, 그것은 피를 끓게 한다.
2. 배가 부글거리면 드러누워 차분한 마음으로 달랠 것. 
3. 움직일 때 몸을 가볍게 흔들어 위액을 계속 분비시킬 것. 
4. 수다는 떠는 일과 같은 나쁜 일에 바져들지 말 것. 사회란 원래 조용하고 편안한 곳이 몬된다.
5. 어느 때든 절대로 뛰지말 것.
6. 뒤를 돌아보지 말 것. 무엇인가가 너를 따라잡을지도 모른다.

 

 새철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지만 사실은 겸손한 사람이었다. "낸시, 자네보다 더 큰 무엇이 있다는 사실을 항시 잊지 말게."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9,000개의 성냥불

 불행히도 새철은 나이를 너무 먹에 메이저리그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새철의 등장하면 여전히 관중석이 빈틈없이 메워졌다. 그는 1956년 마이애미 마린스팀과 첫 게임에 출전하러 헬러곱터를 타고 와선 흔들의자에 앉은 채로 경기를 옆에서 지켜보았다. 오린지볼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을 땐 마이너리그 사상 최고기록인 5만 1713명의 관중이 참관했다. 

 

 새철은 1965년 캔사스시티에서 열린 자신의 메이저리그 마지막 경기에 59세의 나이로 등판했다. 그는 상대팀인 보스턴 레드삭스를 3회 동안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때 경기장의 전기가 나갔고 9,000개의 성냥불이 커졌다. 관중들은 "금실 은실.", "늙은 회색 암말.", "흔들의자"란 노래를 부르며 새철과의 작별을 못내 아쉬워했다. 

 

 1968년 새철은 미주리주 의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낙선하곤 아틀랜타 브레이스팀의 코치로 계약을 맺었다. 1971년 그는 미국 야구의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랐다. 그러나 새철의 늙은 몸은 차츰 쇠약해지기 시작, 1980년에는 폐기종으로 인한 호흡곤란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새칠은 레이건대통령의 백악관 오찬 초대를 받고 응하고 싶었으나 사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82년 6월 5일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캔사스시티 야구장 준공식에 참석했다. 어느 꼬마 야구선수에게 시구를 던진 새철은, "지금 이 자리의 나만큼 기쁜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1925년부터 1947년까지 니그로리그에서 뛰던 새철은 1948~1949년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팀(메이저리그)에서, 1951~1953년엔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팀(메이저리그)에서, 1965년엔 캔사스시티 어슬레틱스팀(메이저리그)에서 투수로 활약했다.

 

죽음

 그다음 월요일 새철은 폐기종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영원히 눈을 감았다. 

지상에 사는 우리들은 별이 타버리고 나는 한참 지난 뒤에야 그 별빛을 본다고 들었는데 새철의 경우가 바로 그런 그것이 아닌가 한다. 그의 장례식에서 나는 알렉산더 대왕이 말한 것으로 생각되는 귀절을 읽었다. 

 

 "용감하게 살다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을 남기고 죽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새철은 정말 멋진 인생을 살았으며, 인생의 여정에서 운 좋게도 그를 알게 된 우리 모두에게 꺼지지 않는 빛을 남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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